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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육사-황혼
    국어/문학-현대시 2020. 2. 8. 01:12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喑喑)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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