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현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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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구름의 파수병국어/문학-현대시 2020. 3. 10. 04:38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시와는 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먼 산정에 서 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해진 물체만들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 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 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 늦은 거미같은 존재 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칸과 마루 한 칸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처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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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산에 언덕에국어/문학-현대시 2020. 2. 8. 01:14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ㄹ지어이’를 통해 화자의 기대와 소망을 드러내면서 시상을 열고 있다)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그’의 이미지를 변주하여 1연의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의미를 강조함)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행인’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비었거든’과 ‘담을지네’를 호응시켜 화자가 처한 상황을 이겨내고자 하는 태도)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5연은 수미 상관을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된 화자의 모습을 부각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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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황혼국어/문학-현대시 2020. 2. 8. 01:12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게 /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토인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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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율포의 기억국어/문학-현대시 2020. 2. 6. 11:56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 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덕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 사람들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만 할까 /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무위(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를 참고할 때, ㉠의 함축적 의미와 가장 유사한 것은? ‘검다’는 대개 ‘어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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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추억국어/문학-현대시 2020. 2. 5. 17:02
종다리 뜨는 아침 언덕 우에 구름을 쫓아 달리던 너와 나는 그날 꿈 많은 소년이었다. 제비 같은 이야기는 바다 건너로만 날리었고 가벼운 날개 밑에 머-ㄹ리 수평선이 층계처럼 낮더라. 자주 투기는 팔매는 바다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고 지칠 줄 모르는 마음은 단애(斷崖)의 허리에 게으른 갈매기 울음소리를 비웃었다. 오늘 얼음처럼 싸늘한 노을이 뜨는 바다의 언덕을 오르는 두 놈의 봉해진 입술에는 바다 건너 이야기가 없고. 곰팽이처럼 얼룩진 수염이 코밑에 미운 너와 나는 또다시 가슴이 둥근 소년일 수 없고나. *과거와 대비되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화자의 단절감이 드러나 있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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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엄마 걱정국어/문학-현대시 2020. 2. 3. 14:28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삼십 단’은 어머니의 삶의 무게가 부각되는 효과를 주는 것 같습니다.(0) -‘천천히’는 애써 외로움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화자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0) -‘타박타박’은 힘겨운 삶에 지쳐 있는 엄마의 고단한 모습을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0) -‘고요히’는 ‘빗소리’에 위안을 받으면서 화자의 무서움이 완화되고 있는 상황을 잘 나타내는 것 같습니..